AI 데이터센터가 SiC·GaN의 '제2 수요축'으로: EV가 닦은 전력반도체 길이 넓어진다
AI 반도체 수요의 무게중심이 HBM에서 전력반도체로 번지고 있다. 그동안 전기차가 홀로 견인하던 SiC·GaN 시장에 AI 데이터센터라는 두 번째 성장축이 붙으면서, 전기차 캐즘의 그늘에 있던 차량용 전력반도체 공급망까지 투자 명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AI 반도체 이야기의 중심이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전력반도체로 옮겨가고 있다. 아주경제는 7월 11일 보도에서, AI 데이터센터가 기가와트(GW)급으로 대형화하면서 전력 손실을 줄이는 실리콘카바이드(SiC)·질화갈륨(GaN) 기반 전력반도체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AI 서버는 수천 개의 GPU를 얹어 기존 서버보다 수배 이상의 전력을 먹는데, 그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손실을 최소화하려면 고효율 전력반도체 채택이 사실상 필수라는 설명이다.
여기서 전장(電裝) 관점의 핵심은 수요축이 하나에서 둘로 늘었다는 사실이다. 지금까지 SiC 시장을 끌어온 것은 전기차였다. 800V 고전압 아키텍처의 인버터, 온보드차저(OBC), DC-DC 컨버터가 SiC·GaN의 첫 대량 채택처였고, 완성차의 전동화 속도가 곧 전력반도체 투자 계획의 전제였다. 문제는 전기차 수요 둔화, 이른바 캐즘이 그 전제를 흔들면서 차량용 전력반도체 증설 논리에 그늘을 드리웠다는 점이다.
- 두 자릿수%시장조사업체들이 전망하는 글로벌 전력반도체 시장의 향후 수년간 성장세(출처: 아주경제 인용)
- 70%DB하이텍 1분기 전력반도체 매출 비중, 이 중 자동차용 12%·산업용 18%(출처: EBN)
- 2조원DB하이텍이 향후 5년간 잡은 차세대 반도체 투자, GaN·SiC 초도 양산은 내년 1분기 목표(출처: EBN)
AI 데이터센터라는 두 번째 엔진은 이 그늘을 걷어낼 수 있는 재료다. 전원공급장치(PSU), 전력변환장치, 무정전전원장치(UPS), 냉각설비까지 SiC·GaN 적용처가 넓어지면 웨이퍼, 파운드리 캐파, 소재·장비에 걸린 투자 회수 기간이 짧아진다. 그리고 이 인프라의 상당 부분은 차량용과 공정·소자 기반을 공유한다. 데이터센터향 물량이 8인치 SiC 라인의 가동률과 수율 학습을 끌어올리면, 그 원가 개선과 수율 안정은 다시 전기차용 전력반도체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쪽 수요의 사이클 변동을 다른 쪽이 메우는, 공급망 입장에서는 반가운 구조다.
국내 진영의 위치도 이 서사와 맞물린다. EBN에 따르면 DB하이텍은 아날로그·디지털·고전압 소자를 한 칩에 통합하는 BCD 공정을 앞세워 1분기 전력반도체 매출 비중을 70% 넘게 끌어올렸고, 자동차용 비중을 12%로 키우며 제품 믹스를 고부가 쪽으로 재편했다. 8인치 파운드리가 가동률 98% 이상으로 돌아가는 가운데 GaN·SiC 초도 양산을 내년 1분기로 잡아 수율을 안정화한다는 계획이다. 아주경제는 여기에 더해 LX세미콘이 디스플레이 구동칩을 넘어 차량용·산업용 전력반도체 진출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이런 증설·진출 계획은 수요 실현 속도와 수율 확보에 따라 성과 시점이 달라질 수 있어 확정된 실적으로 단정하기는 이르다.
정리하면,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폭증은 겉으로는 서버 이야기지만 실질적으로는 SiC·GaN 공급망 전체의 리스크를 낮추는 사건이다. 전기차가 홀로 짊어지던 수요 부담이 둘로 나뉘면서, 캐즘 국면에서 움츠러들 뻔했던 차량용 전력반도체 국산화와 증설의 명분이 다시 살아나고 있다. 완성차의 전동화 속도가 잠시 느려지더라도 전력반도체 생태계는 계속 굴러갈 동력을 얻은 셈이며, 이는 결국 다음 전동화 사이클에서 더 싸고 검증된 차량용 SiC·GaN으로 돌아올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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