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을 만들기 전에 소재를 거른다: 전고체 양산의 숨은 관문 'EIS 진단'
전고체 배터리 경쟁의 진짜 병목은 성능이 아니라 '양산성 검증 속도'라는 진단이 나온다. 배터리 진단 장비 기업 민테크는 전기화학임피던스분광법(EIS)으로 셀을 만들기 전에 소재의 적합성을 걸러내며, 최근 고체전해질·리튬메탈 음극용 공정소재를 개발하는 자회사까지 세웠다. 아직 공급망이 형성되지 않은 차세대 배터리 소재 시장에서 검증 기술이 국산 소재 주도권의 지렛대가 될 수 있다.
전고체 배터리를 둘러싼 서사는 대개 '누가 먼저 양산하느냐'에 쏠려 있다. 그러나 실제 개발 현장의 병목은 조금 다른 곳에 있다. 성능은 잘 나오는 소재가 양산성 검증 단계에서 탈락하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배터리 진단 장비 전문기업 민테크의 홍영진 대표는 ZDNet Korea 인터뷰에서 "전기화학임피던스분광법(EIS)이 소재의 양산 가능성을 더 빠르게 판별하는 데 유용하다는 점에 주목했다"고 밝혔다. 셀을 다 만들어 시험하기 전에, 소재 단계에서 '될 소재'와 '안 될 소재'를 먼저 걸러내겠다는 발상이다.
EIS는 배터리에 미세한 전류·전압을 흘려 내부 상태를 파악하는 방식이다. 충·방전을 반복해 상태를 보는 기존 검사가 15~20시간이 걸리는 데 비해, EIS는 검사 시간을 10~20분 수준으로 줄이면서도 정확도 95% 이상을 구현했다는 것이 회사 설명이다. 완성품 검사뿐 아니라 제조 공정 도중 이상 여부를 판별하는 인라인 진단에도 쓰인다. 수치는 회사가 제시한 값인 만큼 절대 성능으로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빠른 스크리닝'이라는 방향성 자체는 전고체처럼 아직 표준 공정이 없는 영역에서 특히 값어치가 크다.
- 10~20분EIS 진단 검사 시간, 충·방전 기반 15~20시간 대비 대폭 단축·정확도 95%↑(민테크 자체 제시)
- 2030년+홍 대표가 전망한 전고체 '의미 있는 시장' 형성 시점, 양산까지 4~5년 소요 전망
- 200억 원민테크 올해 매출 전망치, 내년 전기차 배터리 검사 의무화로 진단 장비 수요 확대 기대
왜 소재 검증이 관문인가. 홍 대표는 고체전해질을 예로 들었다. 고체전해질은 만들어지면 가장 먼저 이온전도도를 측정하는데, 이온전도도가 리튬이온배터리 수준으로 나와도 양극·음극과 결합이 되지 않으면 쓸 수 없다. 이 결합 적합성을 EIS로 판별하면 셀 단위 시험을 거치지 않고도 소재의 쓸모를 가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민테크는 한국산업기술기획평가원(KEIT)의 전고체 국책과제 주관기관으로 지난해부터 전기차용 황화물계 전고체 개발을 진행 중이며, 인터배터리 2026 현장에서 전고체 샘플도 선보였다.
주목할 대목은 이 검증 역량을 소재 사업으로 확장하는 움직임이다. 민테크는 최근 자회사 '민테크아이오닉스'를 세워 고체전해질용 기능성 소재, 리튬메탈 음극용 공정소재 개발에 나섰다. 공정소재는 셀·소재 기업이 직접 하기보다 외주에 맡기는 영역인데, 홍 대표는 "주요 양극재 기업 두 곳과 양산 규모 확대를 논의 중이며, 개발이 잘 되면 배터리셀 기업에 함께 공급하는 모델을 보고 있다"고 말했다. 진단(수주형·일회성 매출)에서 납품처를 확보하면 매출이 지속되는 소재 사업으로 무게중심을 옮기려는 전략이다. 아직 공급망이 형성되지 않은 차세대 시장에서 공정소재를 선제 공급하면 주도권 확보에 유리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물론 낙관만 할 국면은 아니다. 전고체는 비싼 가격·양산 난이도·사용 제약 탓에 수요처가 불확실하다는 비관론도 공존한다. 홍 대표 역시 "양산 초기부터 가파른 성장은 어렵다"며 배터리셀·소재 기업과의 협력을 전제로 사업을 키운다는 신중론을 유지했다. 북미 전기차 둔화로 배터리 투자 열기가 식으면서 민테크도 적자를 이어온 터라, 실적 개선 시점은 내년 이후로 잡았다. 검사 의무화·사용후배터리 제도 개선이 그 마중물이 될 수 있다는 기대다.
함의는 분명하다. 전고체 레이스에서 각광은 셀 양산 발표에 쏠리지만, 그 아래에는 소재를 얼마나 빨리·정확히 검증하느냐라는 덜 알려진 승부처가 있다. 측정·진단 기술이 소재 개발의 속도를 좌우한다면, 검증 역량을 쥔 기업이 국산 소재 공급망의 길목을 선점할 여지가 있다. K배터리의 전고체 서사를 '누가 먼저 만드느냐'만이 아니라 '무엇으로 걸러내느냐'의 관점에서도 지켜볼 이유다.
※ 이 글은 정보 제공을 목적으로 하며, 인용한 성능·매출·시점 수치는 상당 부분 기업이 제시한 전망·자체 측정값이라 확정된 사실로 보기 어렵다. 투자 판단과 그 책임은 전적으로 독자 본인에게 있다.